오늘 오후에는 사모님 한 분과 함께 봉안당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4월 발인을 모신 60대 사모님이시고, 오늘이 남편분 봉안당 안치 후 1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00일에 함께 다녀오자고 지난주에 약속을 잡아두었습니다.
유족과 저희의 인연이 발인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오늘 다시 느꼈습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의 하루를 시간 순으로 남겨둡니다.
10:15 — 사모님의 조심스러운 카톡 한 통
오전 10시 15분, 사모님으로부터 카톡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오늘 봉안당 함께 가주실 수 있을까요? 100일이라서요"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지난주에 약속을 잡아둔 자리였지만, 사모님은 짐이 될까 봐 조심스럽게 다시 확인해 주셨습니다.
저는 "네, 오후 1시에 사무실 앞에서 뵐게요"라고 짧게 답장을 드렸습니다.
유족의 조심스러움은 발인 뒤에도 종종 이어집니다.
봉안당 동행은 저희 정식 서비스에 포함된 항목은 아닙니다.
다만 발인 뒤 사후 안내문에서 "1주기·49재·100일 등 방문 시 저희 팀 동행 가능"이라고 안내드리고 있습니다.
유족께서 혼자 봉안당에 가시는 게 무거우실 때 저희가 함께 있어 드리는 자리입니다.
사모님은 남편분과 둘만 사시던 분이라 오늘 혼자 가시는 게 걱정되어 저에게 부탁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후 상담 예정 하나만 다른 담당자에게 넘기고 오후 시간을 비웠습니다.
11:04 사모님께 "오후 1시 사무실 앞에서 뵙겠습니다. 국화는 저희가 준비할까요"라고 다시 카톡을 드렸습니다. 사모님은 "제가 직접 골라 가고 싶어요"라고 답해 주셨습니다. 그 마음도 100일에 함께 담기고 있었습니다.
13:22 — 대구 명복공원 봉안당 도착, 3층 A-42호
오후 1시 정각, 사모님이 사무실 앞으로 오셨습니다.
회색 원피스에 흰 카디건, 작은 국화 다발을 손에 들고 계셨습니다.
저희 차량으로 대구 명복공원 봉안당까지 20분 정도 이동했습니다.
차 안에서 사모님은 창밖만 바라보시며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저는 라디오를 켜지 않았고, 사모님의 침묵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오후 1시 22분, 대구 명복공원 봉안당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여름 오후 봉안당은 방문객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모님이 방명록에 조용히 이름을 적으시고, 남편분 유골함이 안치된 3층으로 함께 올라갔습니다.
봉안 3층 A-42호 앞에서 사모님은 잠시 서서 유골함에 손을 얹으셨습니다.
100일 만의 재회였습니다.
13:41 사모님이 국화 다발을 봉안함 옆 선반에 조심스럽게 놓으셨습니다. 봉안당 3층 창밖으로 명복공원 산자락이 조용히 보였습니다. 저는 사모님께서 자리를 잡으실 수 있도록 두 걸음 뒤로 물러섰습니다.
14:38 — 봉안당 벤치의 30분, 처음 여신 한 마디
오후 2시 38분까지, 사모님은 봉안당 앞 벤치에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사모님이 손에 들고 오신 국화 한 다발을 봉안함 옆에 두시고, 그 뒤로 30분 정도 조용히 앉아 계셨습니다.
봉안당 안은 시원했고, 창밖으로 명복공원 산자락이 보였습니다.
사모님이 처음 입을 여신 건 30분이 지난 뒤였습니다.
"100일 지나면 마음이 담담해진다고 하던데, 여기 오니까 다시 무거워지네요."
저는 "무거워지는 게 정상이에요"라고 짧게 답해 드렸습니다.
100일은 사모님께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남편과의 재확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함께 와주셔서 덜 무거워요"라고 사모님이 덧붙이셨습니다.
그 한 마디가 저희가 봉안당 동행 서비스를 이어가는 이유입니다.
오후 3시 12분, 사모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봉안함에 손 인사를 짧게 하시고, 저와 함께 봉안당을 나섰습니다.
"다음에는 1주기 때 올게요"라고 사모님이 봉안함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뒤에서 반 걸음 떨어져 걸었습니다.
봉안당을 나서는 길, 여름 매미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15:34 사모님을 저희 차량에 태우고 명복공원을 빠져나왔습니다. 사모님은 봉안당 입구 쪽을 한 번 더 돌아보시고, 그 뒤로는 앞만 보고 앉아 계셨습니다. 100일의 자리가 뒤로 조용히 남았습니다.
16:15 — 사모님 자택 앞 하차, 1주기 약속
오후 4시 15분, 사모님을 자택 앞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사모님은 차에서 내리시기 전 잠시 말을 고르셨습니다.
"1주기 때도 부탁드려도 될까요"라고 조심스럽게 여쭤보셨습니다.
"네, 그때도 함께 가겠습니다. 카톡 주시면 됩니다"라고 답해 드렸습니다.
사모님이 처음으로 살짝 웃으셨습니다.
저는 사모님이 아파트 현관에 들어가시는 걸 확인한 뒤 차를 돌렸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오늘의 하루가 조용히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100일 봉안당 방문 세 시간이 저희 팀의 일요일 오후를 채웠습니다.
발인 뒤 100일, 그 시간이 유족에게는 여전히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입니다.
저희는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무겁게 만들어 드리는 자리에 있습니다.
16:52 사모님으로부터 카톡이 도착했습니다 - "오늘 함께해 주셔서 덜 외로웠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1주기 때 뵙겠습니다"라고 짧게 답장했습니다. 유족과의 다음 인연이 이렇게 하루의 끝에 다시 시작됩니다.
일요일 오후의 세 시간을 정리하며
봉안당 동행은 저희 사무실에서 매달 두세 번 있는 자리입니다.
발인 100일, 49재, 1주기, 5주기까지 유족과의 인연은 조용히 이어집니다.
사모님이 오늘 마지막에 웃어주신 그 순간, 저희 일의 의미가 되돌아왔습니다.
장례지도사는 발인 하루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발인 이후의 시간이 오히려 저희가 오래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혹시 100일·49재·1주기 등 유족 방문 자리에 저희 팀 동행이 필요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1533-6544로 편하게 전화 주시면 됩니다.
발인 후 사후 서비스로 저희가 함께 이동해 드립니다.
봉안당·산소·절 등 어떤 자리든 유족께 편안한 방문이 되도록 곁에 있어 드립니다.
주식회사 이앤씨컴퍼니, 무빈소장례 130만원·스몰장례식 180만원, 단일 패키지에 추가 비용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