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를 마치고 한 달, 두 달, 1년이 지나서도 가족분들께서 연락을 주십니다.
손편지로, 사무실 방문으로, 카카오톡으로, 전화 한 통으로.
그런 후기 한 줄 한 줄이 저희에게는 다음 가족을 모시는 힘이 됩니다.
6월 한 달 동안 받은 후기 네 분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가족분들 동의를 받고, 이름과 세부 사항은 바꾸었습니다.
06-02 14:33 — 자택 임종 따님의 손편지 한 통
6월 2일 오후 2시 33분, 우편함에 손편지가 한 통 들어와 있었습니다.
5월 말 자택에서 아버님을 보내드린 50대 따님이 직접 쓰신 편지였습니다.
"발인하고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실감이 안 납니다"라고 시작되는 편지였습니다.
저희 직원 이름을 한 명씩 다 적어 두셨고, 마지막에 "감사합니다" 한 단어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 편지를 사무실 게시판에 그대로 붙여두었습니다.
편지 안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빈소장례가 처음에는 가족 어른들 눈치가 보였는데, 막상 끝나고 보니 아버지께서 좋아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용히 우리끼리 보내드린 시간이 오히려 더 깊은 작별이 되었습니다."
자녀분들이 결정하시기 어려웠던 형태였는데, 끝나고 나서 마음의 정리가 더 잘 되셨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가장 듣고 싶은 후기였습니다.
편지는 게시판 정중앙에 붙어 있습니다. 다른 가족분들이 사무실 오시면 한 번씩 읽어보십니다.
06-11 09:12 — 1주기 추모 방문, 사모님이 1년 만에 다시 오심
6월 11일 오전 9시 12분, 사모님께서 사무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작년 6월 발인을 마치신 분이셨고, 정확히 1년 만의 방문이었습니다.
손에 작은 떡 상자를 들고 오셨고, "1주기에 같이 안치한 분 옆에 다녀오는 길이에요"라고 하셨습니다.
1주기에 저희를 떠올려 주시는 가족이 종종 계십니다.
사모님은 작은 의자에 앉으셔서 30분 정도 말없이 차를 드셨습니다.
"1년 사이에 마음이 많이 달라졌어요"라고 사모님이 입을 떼셨습니다.
첫 한 달은 아무것도 안 보였고, 석 달 지나니 사진을 다시 꺼낼 수 있었고, 1년 지난 지금은 추억 이야기를 웃으면서 한답니다.
"그때 빈소 안 차린 게 후회되지 않으세요?"라고 제가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사모님은 잠시 생각하시다가 "조용한 작별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게 느껴져요"라고 답하셨습니다.
"우리 둘만의 마지막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09:48 사모님이 떡 한 상자를 두고 나가셨습니다. 다음 1주기 때 또 들르신다고 하셨습니다.
06-19 21:47 — 비행기 안에서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6월 19일 밤 9시 47분, 카카오톡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습니다.
한 달 전 시아버지 장례를 한국에서 모셔드린 캐나다 거주 며느리께서 보내셨습니다.
토론토로 돌아가시는 비행기 안에서 직접 적어 보내신 글이었습니다.
"기내 와이파이로 보내요. 도착하면 잊어버릴까 봐 지금 적어요"로 시작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글을 쓰셨다는 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메시지 내용은 짧지만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한국 장례 처음이라 무서웠는데, 가족 옆에 있어주셔서 든든했어요."
"통역사 선생님 통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신 덕분에, 시어머니가 평생 한국에서 살아오신 절차를 제가 마지막으로 잘 도와드릴 수 있었어요."
"캐나다 가서 친구들한테도 한국 장례를 어떻게 모셨는지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끝에는 짧은 영어 한 줄이 더 있었습니다 - "Thank you for being there."
22:14 답장을 보냈습니다 - "안전한 비행 되세요. 다음에 한국 오시면 사무실에 들러 주세요." 다음날 새벽 토론토 도착 알림이 왔고, 며느리께서 "잘 도착했어요" 한 마디 보내주셨습니다.
06-25 11:08 — 49재 다녀오신 가족의 감사 전화
6월 25일 오전 11시 8분, 한 따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5월에 어머님 무빈소장례 모셔드린 가족분이셨고, 어머님 49재를 막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엄마 다니시던 절에서 잘 보내드리고 왔어요. 사장님 알려주신 대로요."
저희가 49재 절차도 함께 안내해 드린 가족이었습니다.
"끝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해요"가 통화의 첫 마디였습니다.
따님은 49재 동안 가족들이 모여서 어머님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엄마가 평생 베푸시던 분이라, 49재 자리에 절 식구분들이 많이 와주셨어요."
"형제들끼리도 평소엔 잘 안 모이는데, 어머니 덕분에 49일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만났어요."
장례가 가족의 끝이 아니라, 가족이 다시 모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님이 좋아하셨겠어요"라고만 짧게 답해드렸습니다.
11:34 통화 종료. 따님은 "내년 1주기 때도 또 연락드릴게요"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가족분과는 인연이 오래 이어집니다.
한 달의 후기를 정리하며
네 분의 후기를 정리하고 보니 묘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자택 임종, 1주기 방문, 해외 거주 며느리, 49재 이후 - 시점은 다 달랐지만 한 단어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조용히 보내드린 게 좋았다."
무빈소장례를 결정하실 때는 망설이셨던 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깊게 만족하시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빈소 없는 작별은 가족에게 더 또렷한 추억을 남겨드리는 것 같습니다.
혹시 무빈소장례·스몰장례식이 처음이라 걱정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1533-6544로 전화 주시면 됩니다.
과거 가족분들의 후기를 더 자세히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
주식회사 이앤씨컴퍼니, 무빈소장례 130만원·스몰장례식 180만원, 단일 패키지에 추가 비용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